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로 학살 (문단 편집) === 실제 사례 === 아래 소개되는 것들은 현대 관점에서는 패악질이나, '''당시의 관점에서는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이었던''' 것들이 많음을 명심하자. 학살을 옹호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이,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대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포로학살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재도 [[제네바 협약]]을 제대로 지키는 나라는 선진국뿐이다.] 일단 포로를 먹여주기가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생산력이 현대시대보다 훨신 떨어지기 때문에 아군의 보급도 굉장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석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보다 인도적인 일은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이었고, 중세까지도 이렇게 전쟁포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예가 되는 일이 흔했다. * [[주필산 전투]] - [[당태종]]이 고구려에 종군한 말갈병 3,300명을 파묻었다. 당태종 본인은 정관의 치로 유명한 개념있는 군주였고, 고구려인 포로들에 대한 대우 역시 그 당시 관점에선 상당히 개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당서, 신당서에 부하장병들에게 포로로 잡힌 고구려인들을 금전으로 속환하여 풀어주었다거나, 고향으로 돌려보내줬다거나 하는 기록들이 많다. 물론 당태종이 단순히 선량하다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유화책을 펼쳐서 고구려인들의 전쟁 수행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유독 말갈인들에 대해서만 이렇게 잔혹하게 처분한 것은 의문. 당과 고구려의 전쟁에서 말갈군들이 고구려인이 아닌데도 참전했기 때문에 주변 민족에 대한 경고 차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말갈병들이 당 태종의 진영을 침입한 고르고 고른 최정예 무사들이어서 그런 것이라는 말도 있다. 옛날 전쟁에서는 무사들이 없으면 군사 편성이 어려웠기 때문. * [[관도대전]] - [[조조]]에 의해 자행된 포로 학살 사건. 사서에 따라 다르지만 조조에게 사로잡힌 포로는 무조건 죄다 조조가 파묻어버렸고 포로로 잡히지 않은 나머지 원소군 7~8만 군사도 이 전후로 조조가 다 죽여 버렸다.[* 다만 포로로 잡히지 않은 병사들을 죽인건 조조가 전투에서 승리-추격전을 하는 과정에서 죽인거라 포로 학살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이 양반은 [[서주 대학살|이쪽]]이 워낙 유명하고 악명 높지만.] * [[십자군 전쟁]] 당시 대인배로 유명한 [[리차드 1세]]와 [[살라흐 앗 딘 유수프]]도 상황이 꼬이면 포로들을 종종 학살했다. 특히 살라딘은 [[성전기사단]]이나 [[구호기사단]]이 잡히면 거의 대부분 처형했는데, 침략자들의 앞잡이로써 존재 자체가 이슬람 세계에 위협적이라고 봤기 때문.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무장친위대]]나 소련 [[정치장교]]들이 가혹하게 처분받은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 [[태평천국 운동]] - 당시 청나라군은 태평천국군이 항복하면 즉시 처형을 기본방침으로 삼았다. 지휘관급이 항복한 경우 [[능지형]]에 처했다. 태평천국군도 항복은 곧 죽음이라는 일념하에 끝까지 저항했고, 항복한 청나라군을 대상으로 보복 학살했다. 그래서 이 전쟁은 14년 이상 지속되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 [[서울대병원 학살사건]] - 이 경우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대병원을 접수한 뒤, 병원의 군인 환자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스위스 용병]] - 포로를 생포하지 않는 전멸전을 선호했다. 적들은 그들의 무자비함에 혀를 내둘렀으며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 [[신안대학살]] - [[항우]]가 이미 귀순한 포로 '''20만 명'''을 야밤에 습격해 죽이고 파묻어 버렸다. '''항우의 대표적 오점.''' 기원전 207년 당시에도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참고로 위만의 고조선 망명이 기원전 195년이다.(...) 그 옛날에도 도덕적 질책을 받은 것은 물론 라이벌 유방에게 좋은 프로파간다가 되었다. * [[아쟁쿠르 전투]] - 영국군의 승리가 아직 확실시되기 이전 시점에, 프랑스군이 후방의 수송대를 공격한 걸 알게 된 영국의 왕 [[헨리 5세]]는 포로로 잡은 프랑스군 중 몸값을 낼 능력이 되는 고위귀족을 제외한 포로들을 학살하게 했다. 배후가 습격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포로 감시로 병력을 빼놓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지, 헨리 5세가 특별히 잔인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귀족인 영국의 기사들이 기사도 때문에 그 명령을 내키지 않아하고 머뭇거리자, 그들을 프랑스군의 잔당을 상대하게 하고 평민 병사들에게 직접 학살하게 했다. 평민 병사들은 귀족인 기사들에게서 금니 등 약탈물을 챙길 수 있고 귀족인 기사들을 평민 병사인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는 쾌감 때문에 신나게(?)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을 포함해 영국군이 약탈을 저지르고 다니자 부르고뉴파가 아닌 아르마냑파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지역에 반영감정이 생겼고 이후 프랑스군도 영국군을 물리치고 포로를 잡았을 경우 몸값을 낼 능력이 없는 포로를 똑같이 학살하는 경우도 생겼다. [[잔 다르크]]가 영국군을 물리쳐서 승리했을 때 프랑스군이 포로를 학살하는 그런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승전의 기쁨도 잊은 채 죽거나 부상당한 영국군 포로를 직접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위해 위로해주고 기도하기도 했다. * [[장평대전]] - [[조괄]]에 의해 참패한 [[조나라]] '''40만''' 군대를 [[진나라]] [[백기(전국시대)|백기]]의 군대가 사로잡은 후 참수하고 파묻어버렸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봐도 손꼽히는 포로 학살 사건. 다만 이 경우는 포로를 노예로 파는 관습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저격수]] - 저격수들의 경우 적군들의 증오심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포로로 잡힌 즉시 그 자리에서 그냥 쏴죽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아니 그냥 쏴 죽이면 오히려 자비로운 수준이었고 끔찍한 보복을 가한 뒤에 죽여버리는 일도 빈번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온화한 성품으로 유명한 미군의 [[오마 브래들리]]조차 저격수 포로들에 대해 '보통보다 더욱 거칠게' 대하는 것을 용납할 정도였으니 일선의 병사들이 어떻게 대했을지는 불보듯 뻔했다. 게다가 그나마 상식이 통하던 [[서부전선]]에서도 이랬는데 [[동부전선]], 즉 지옥도가 펼쳐졌던 [[독소전쟁]] 전선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특히 여군 저격수를 다수 운용했던 소련의 경우에는...저격수 항목에도 있지만 독일군에게 살해된 러시아 여성 저격수의 시신을 조사하던 중 시신의 몸속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보니 야삽부터 우의까지 "독일군 보병 1명이 쓸 군장 한 세트"가 처박혀 있었다고 한다(...) 잡히면 그야말로 죽기 전까지 그야말로 지옥을 체험하게 된다.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다에쉬]] - 사기진작 및 선전을 위하여 잡은 포로들을 총살하거나 참수하거나, 화형시키거나 익사시키는 등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처형하면서 영상이나 사진을 트위터 등에 올리며 악명을 떨쳤다. 인과응보로 이라크 정규군이 다에쉬 대원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영상을 업로드하는 등 잡히는 족족 자기들이 한 짓들이 그대로 되돌아왔다. * [[태봉]]과 [[신라]]의 관계 - 태봉국의 [[궁예]]는 신라를 멸도로 칭하고 귀순해오는 자를 모조리 죽였다고 한다. * [[한국전쟁]] 당시의 [[조선인민군]] - 일사천리로 내려가야 하는데 포로는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포로 중 상당수는 포박한 뒤 뒷통수에 총알 하나씩 박아넣고 버렸다. 대표적으로 서울대의대 학살사건, 후퇴 중에 벌어진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 등이 있다. 혹은 굴 속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 안에 수류탄을 까넣고 퇴각했다.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전쟁 중 탈레반이 항복한 아프가니스탄 병사들을 학살 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유출되었다. *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 양군끼리 마구 서로 학살했다. 아제르바이잔군은 포로 아르메니아군을 참수하여 목을 들고 모욕하거나 발로 차며 이걸 또 영상으로 공개했고, 아르메니아군도 질세라 포로 아제르바이잔군을 학살해 시체까지 돼지먹이로 주는 영상까지 공개하며 서로 욕을 먹었다. 포로 문제에 대해서 양 측을 지지하던 나라들은 서로 입다물었다. * [[2022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분쟁]] - 이후에도 벌어진 분쟁에서도 마찬가지. 아르메니아 여군이던 아누시 아페티안 Anush Apetyan(아르메니아어: Անուշ Ապտյան), (1986 – 2022년 9월 13일 또는 14일)은 포로가 되어 아제르바이잔군에게 강간당한 뒤로 무수하게 얻어맞고 손가락이 잘리고 눈에 칼을 맞아 고통 속에 죽어가는 영상까지 공개되었다. 이에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밥 메넨데즈]] 상원의원은 아제르바이잔군이 아르메니아 여군을 고문, 강간, 학살하는 영상을 보고 미국의 외교정책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테러리스트 국가를 지원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상원에서도 이번 국경 분쟁와중에 아제르바이잔군이 벌인 포로 학살도 분명히 문제지만, 아르메니아의 도발도 넘어갈 수 없으며 이미 2년전 전쟁 당시, 보란듯이 아제르바이잔군 포로를 학살해 시체를 돼지먹이로 준 아르메니아는 뭐가 잘났냐는 상원에서도 반대가 만만치 않았고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는 유태인 상원의원들은 반발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러시아군 측에서 우크라이나군조차도 아닌 항복한 민간인을 조준해서 쏴죽이는 장면이 드론이나 캠 등으로 잡혔으며, 우크라이나군 포로를 상대로 단순 총살 뿐만 아니라 산 채로 신체를 훼손하거나 성기를 절단하는 등의 고문 행위를 가하여 죽이고 [[스너프 필름|이를 영상으로 남기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항복한 러시아군 포로들을 쏴죽여버리는 영상들이 찍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